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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건강 책

죽음 명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by 엄지책 2022.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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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지수 

1971년 생

기자, 패션지 에디터, 경제 미디어 문화전문기자님

 

오늘의 주 인물

이어령

1934년 생

오늘의 책은 이어령 작가님이 암에 걸려 투병 중일 때

김지수 기자님은 이어령 작가님과 만남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때 인터뷰한 내용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한마디로 이어령 작가님의 지혜를 라스트 인터뷰식으로 전하고 있었음을..

저는 그 두 분이 나눈 죽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죽음에 대한 명언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죽음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이며,

나의 인생이 어디까지 인지는 몰라도 남은 인생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죽음 명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01.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02.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

결국 삶이 무엇인지 또 잊어버리고 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삶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결국 죽음이고

결국 죽음은 삶으로 이어지는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어왔습니다.

그 의미는 미궁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렇다면 삶에 대해서 알아가 보겠습니다.

 

03. 

유리컵을 사람의 몸이라고 가정해보게나.

컵은 무언가를 담기 위해 존재하지.

그러니 원칙적으로는 비어 있어야겠지.

 

비어 있으면 그 뚫린 바깥 면이 어디 가지 이어지겠나

끝도 없어,

우주까지 담아.

그게 영혼이라네.

 

빈 컵에 물을 따랐어.

여기 유리컵에 보이차가 들어갔지?

이 액체가 들어가서 비운 면을 채웠잖아. 

이게 마인드라네.

저는 이 죽음 명언을 듣고 한 참을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감정, 한 사람의 존재 그리고 영혼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기분이었습니다.

한 사람이란, 마인드를 담고 있는 거구나.

살아있어서 느낀다는 게 이런 거였지. 이게 맞는 거지. 라며

다시 한번 느낀다는 소중함에 대해 느꼈습니다.

영혼을 인정하는 것,

내 안의 마인드, 내 컵에 담긴 물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04.

천국은 뭐라고 설명하시겠어요?

물질과 마인드가 있었던 기억과

그것을 담을 수 있게 했던 빈 컵 그 자체.

기독교에서는 천국이라고 하고

소크라테스는 이데아라고 했네.

영원불멸이야.

공허는 죽지 않아.

 

무언가 탄생하고, 죽음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비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이름, 명칭을 달리 했을 뿐

많은 것들이 같은 것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명언이었습니다.

그저 막연하고 두려웠던 죽음이 죽음 명언을 통해

우리는 막연함에서 조금은 상상해볼 수 있는 천국이었습니다.

비어있는 공허.

예전에는 비어 있으면 더 어둡고, 무서웠는데

요즘에는 비어있어 더 신비롭고, 어둡지만 제일 밝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어옵니다.

 

05.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어.

동물원 철창 속에 있는 호랑이였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우리가 죽음 명언을 읽고 있는 이 시간을 무색하게 만들어옵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합니다.

누군가 암으로 아프다고 하면 같이 슬플지언정

그 고통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 글을 통해 그저 죽음 앞에 사람은 작아지는구나라는 감정을

이해해 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고통은 그저 무의미한 것일까요?

다음 명언을 꼭 이어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06.

고통 없는 죽음이 콜링인 줄 알았나?

아니야.

고통의 극에서 만나는 거라네.

 

신이 없다고 한 놈이 신을 보는 거라네.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작 신을 못 봐.

 

07.

딸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나니

가장 아쉬운 게 뭔지 아나?

살아있을 때 그 말을 해줄걸이야.

그때 미안하다고 할걸,

그때 고맙다고 할걸,

 

죽음 명언을 접하면서,

죽음을 알 수 없었습니다.

감히 알 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죽음 명언을 알고자 했던 것은

더 살고자 했던 열망이었습니다.

 

08.

죽음에 가까이 가고서 나는 깨달았어요.

죽음을 알려고 하지 말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 글귀를 보면서

글귀도 명언도 좋은데 더 중요한 건 그 글에 담긴

스토리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소중한 죽음이라는 생각 앞에 있던 이야기는

태아 형성 과정을 보면, 그렇게 계산하면,

내 나이는 사실 36억 플러스 여든일곱이야 라는 대사와

함께 죽음 가까이 가서 나는 깨달았다고 전합니다.

이 글을 보면서 끝이란 있는 걸까?

끝은 없을 수도 있겠다.. 이어서 또 다른 시작일 뿐.

 

죽음 명언을 읽고 생각이 드는 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어령이 전한 이 대사 떠오릅니다.

그 어떤 죽음을 이야기하더라도 그 죽음 문 앞에 까지 간 사람의 이야기 

밖에 없다는 말... 그래서 오로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더 경건한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다른 책과 다른 진리 같은 재미와 경건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다만, 지금 살아 있어서 주어진 시간을 더 감사하게 느낄 뿐이었지요.

죽음이 또 다른 시작이라서 죽음을 회피책으로나 미화할 수는 없는 것

이라는 생각이 바로 살아있어서 더 감사한 이유입니다.

지금 너무 힘들어도,

힘들어서 이겨낸 나만의 스토리는 오로지 나만이 만들 수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내 몸일 때 나에게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 몸일 때 바다를 좋아하는지 산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내 몸으로 나만의 에너지로

그 영감을 떠올릴 수 있는 것도 지금의 나일 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내가 나의 시간을 다 쓴 다음 죽음 명언처럼 또 다른 시작을 이어간다면

나의 몸, 나라는 사람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미안해, 아쉬워라는 말보다는 고마웠어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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